등산이 MZ세대 주말 운동 1위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아재들 취미 아닌가 싶었거든. 근데 실제 데이터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주말에 관악산에 갔다가 놀란 것
올봄 관악산에 처음 가봤다. 평일 피로가 쌓여서 그냥 걷고 싶었던 거라 큰 기대 없이 나갔는데, 막상 등산로 입구에 서보니 2030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절반은 됐다. 아웃도어 재킷에 캡 모자, 손엔 텀블러. 어딜 봐도 전형적인 '중장년 등산 복장'이 아니었다.
정상 구간에는 아예 줄이 생겼다. 연주대 직전 구간에서 20분 넘게 기다렸다. 같이 기다리는 사람들 대화를 들으니 "인스타에 올리려고 왔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산을 오른 이유가 달랐다.

데이터가 말하는 게 따로 있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6년 4월 발표한 '등산 경험 및 등산 문화 관련 인식 조사'(전국 성인 1000명 대상)를 보면 이게 느낌만은 아니었다.

20대 등산 경험률이 9%p 올랐다
연령대별로 보면 더 뚜렷하다.
- 20대: 2024년 55.6% → 2026년 64.5% (+9%p)
- 30대: 56% → 62%
- 40대: 52% → 67.5%
- 50대: 55.2% → 70%
전 연령대에서 늘었지만, 절대 수치로 봤을 때 증가폭은 20대가 가장 컸다. 최근 1년 내 등산 경험률은 전체 66.9%에 달하고, 응답자 중 58.8%가 "등산 인구가 늘고 있다"고 체감하고 있었다.

인식은 아직 '아재 취미'인데 행동은 정반대
재밌는 지점이 있다. 같은 조사에서 20대의 36%, 30대의 29%는 등산을 여전히 '중장년 중심 취미'로 인식한다고 답했다. 머릿속 이미지는 아직 바뀌지 않았는데, 실제 등산을 하러 가는 20대는 빠르게 늘고 있다는 말이다.
인식이 바뀌기도 전에 행동이 먼저 바뀐 것. 이게 지금 한국 등산 트렌드의 핵심이다.
왜 MZ세대가 산에 가기 시작했나
SNS 인증이 만든 등산 콘텐츠화
등산 인구가 늘어난 이유로 20대의 40.5%, 30대의 39.0%가 'SNS 인증 문화 확산'을 꼽았다. 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은 운동했다는 증거이자 갓생의 인증이다. 러닝 기록을 공유하는 것처럼, 등산도 이제 GPS 루트와 셀카를 올리는 하나의 콘텐츠가 됐다.
구글 트렌드에서 '관악산' 검색량은 올 초 100점(최고치)을 기록했다. 한 방송에서 "운이 안 풀릴 때 관악산에 가라"는 말이 나온 뒤 MZ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퍼진 것도 있는데, 사실 그 이전부터 관악산은 이미 뜨고 있었다.
혼자서도 되는 운동, 갓생의 새 아이콘
등산 인구 증가 이유 1위는 '혼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운동'(46.1%)이었다. 헬스장에 가면 기구 차지하는 사람 눈치 봐야 하고, 테니스나 배드민턴은 상대가 필요하다. 등산은 그냥 혼자 나가서 걷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웰니스에 관심 많은 MZ세대 특성상, 운동과 자연 힐링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한다. 84.5%가 '도시 근교 낮은 산 방문이 늘었다'고 느끼고, 82.9%는 '정상 정복보다 트레킹·산책 형태가 늘었다'고 답했다. 정상 찍어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지면서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도 크다.
고프코어 패션의 일상화
등산이 패션과 만난 것도 빠진다. 고프코어(Gorpcore)는 아웃도어 기어를 일상복처럼 입는 스타일인데, 이게 이제 도심에서도 흔해졌다. 네파는 가수 안유진을,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은 에스파 닝닝을, 스노우피크는 방탄소년단 뷔를 모델로 기용했다. 브랜드들이 2030 공략에 나선 건 소비 데이터가 그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뜻이다.
근데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등산 트렌드가 빠르게 번지면서 불편함도 생겼다. 인기 산의 과밀화 문제가 대표적이다. 관악산 연주대 진입에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 생겼고,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등산로 쓰레기 증가'와 '러닝 크루 민폐 행동'에 대한 불만도 꾸준히 올라온다.
트렌드로 시작한 활동이 SNS용 인증에 그치면 진짜 등산 문화 정착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 번쯤 가보는 것'과 '꾸준한 취미'는 다른 얘기라서, 지금 수치가 일시적 유행인지 구조적 변화인지는 좀 더 봐야 한다.
등산 붐이 일회성으로 끝날까
러닝 트렌드를 보면 힌트가 있다. 한국 러너 수는 현재 추산 1000만 명으로 2015년의 2배 수준이다. 마라톤 대회도 2020년 19개에서 2024년 254개로 늘었다. 달리기 전문 매장 카드 지출은 최근 2년간 216% 급증했다.
러닝이 유행했다가 그냥 사라지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것처럼, 등산도 비슷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있다. 도시 근교 낮은 산 중심으로, SNS 인증보다 개인 건강 관리 목적의 '웰니스형 여가'로 흡수되는 형태로.
나는 관악산에서 줄 서서 기다리면서 좀 짜증났지만, 그래도 이 트렌드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헬스장 안 가도 되고, 돈도 별로 안 들고, 공기 마시면서 1~2시간 걷고 오면 그것만큼 가성비 좋은 운동이 없다. 그게 아재 취미든 MZ 취미든 별 상관 없다.
비슷한 반전 트렌드가 궁금하다면 음주율은 하락하는데 술방이 폭증하는 현상이나 텍스트힙 열풍인데 독서율은 역대 최저인 역설도 비슷한 맥락이다.
📎 참고 자료
- MZ들 줄서서 산에 오르는 이유가 — 매일경제 (2026.04.07)
- SNS verification drives MZ hiking boom in South Korea — Chosun Biz (2026.04.07)
- MZ들 관악산 오른다, 아웃도어 시장 판도 바뀌나 — 동아일보 (2026.03.12)
- Korea's running trend shows no signs of slowing in 2026 — Korea Times (2026.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