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번따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서점에서 번호를 딴다고? 그냥 인터넷 밈인 줄 알았는데, 조회수 200만 회짜리 영상이 실재했다. 교보문고가 '번따 성지'로 불리기 시작한 배경과, 실제로 불편했다는 반응들을 정리해봤다.

서점 번따가 뭔데 이렇게 난리야
번따는 '번호 따기'의 줄임말이다. 낯선 이성에게 연락처를 요청하는 행위인데, 최근 대형서점이 이 번따의 '성지'로 떠올랐다.
발단은 지난 3월 초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릴스 영상이다. "남친 사귀고 싶어서 번따 성지 교보문고 다녀옴"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이 영상에서, 한 여성이 주말 오후 재테크 코너에 자리를 잡고 "번호 따일 때까지 기다린다"는 자막과 함께 후기를 공유했다. 영상은 4월 초 기준 조회수 203만 회를 넘어섰다.
이후 "강남 교보문고에서 번따하는 41세", "번따 성지 OO문고 30초 후기" 같은 영상이 줄줄이 올라오면서 서점이 헌팅 장소로 소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퍼지기 시작했다. 재테크 코너, 문학 코너, 주말 오후 4~5시대가 특히 성지로 꼽힌다는 구체적인 정보까지 공유됐다.

왜 하필 서점인가 — 자만추와 텍스트힙의 교차점
서점에서 번따가 유행한 건 갑자기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몇 가지 흐름이 맞물린 결과다.
첫째는 '자만추'다.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줄임말인데, 헌팅포차나 소개팅 앱 대신 일상 공간에서 우연히 이성을 만나고 싶다는 흐름이다. 서점은 자만추 입장에서 꽤 매력적이다. 혼자 오는 사람이 많고, 같은 코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취향의 공통점이 생긴다. 인구보건복지협회 2024년 조사를 보면 미혼남녀 50% 이상이 만남에서 '가치관과 성격의 일치'를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꼽았다. 서점이 그 조건에 딱 맞아 보이는 거다.
둘째는 텍스트힙과 패션독서 트렌드다. 2030 세대 사이에서 책 읽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문화로 즐기는 텍스트힙이 유행하면서 서점 방문자 수가 늘었다. 문제는 그 안에 실제로 책을 읽으러 온 사람과, SNS 인증이 목적인 사람이 섞이면서 서점의 성격이 흐릿해졌다는 거다.
사실 이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에도 유흥시설 집합금지 명령 이후 서점에서 번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엔 헌팅포차 수요가 갈 곳을 잃어서 서점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였다. 그때는 코로나 탓이라도 했는데, 지금은 그게 없다.

실제로 불편한 순간들이 따로 있다
번따 논란이 커진 건 단순히 "서점에서 번호를 물어보는 행위"가 아니라, 그 방식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허락 없는 촬영이 불쾌하다
커뮤니티와 SNS에 올라온 실제 경험담들을 보면 공통된 패턴이 있다. "서점에서 책 보는데 누가 옆모습을 찍더라", "휴대폰으로 촬영하길래 모두 지우라고 요구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번따 영상을 찍는 과정에서 다른 이용객이 배경으로 찍히거나, 심지어 몰카처럼 찍혀 SNS에 올라가는 경우도 문제가 된다.
나도 한번 조용히 책 보다가 누군가 말을 거는 상황이 생겼는데, 그냥 길을 묻는 건지 번따인지 구분이 안 돼서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서점은 원래 말이 없는 공간이라 더 당황스럽다.
반복 접근, 법적으로 어디까지 가능한가
단순히 번호를 물어보는 것 자체는 대부분 법적 문제가 없다. 하지만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반복적으로 접근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발언을 동반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지속·반복적인 접근은 스토킹으로 처벌받을 수 있고, 성적 발언이나 신체 접촉을 동반하면 성추행·성희롱으로도 처벌 대상이 된다고 지적한다.
물론 대부분의 번따 시도는 그 수준에 이르지 않는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독서 중에 반복적으로 말을 거는 행위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목소리가 많다. 조용한 서점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한 번 말을 걸면 그 자리를 떠나기도 쉽지 않다는 게 불편함의 핵심이다.
서점도 대응 중이고, 피하는 방법도 공유되고 있다
교보문고는 번따 이슈가 확산되자 독서 공간 에티켓 안내문을 매장에 비치했다. "소중한 독서의 순간이 낯선 접근으로 방해받지 않도록"이라는 내용으로, 민원이 자주 발생하는 구역을 중심으로 CCTV 모니터링과 보안 순찰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SNS에서는 번따를 피하는 방법도 함께 공유됐다. "1분 안에 여자 작가 다섯 명 말해보라고 요구하라"는 대처법이 화제가 됐고, "페미니즘 서적 코너로 자리를 옮기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 팁들이 오히려 더 화제가 되면서 서점 번따 논란이 확산된 면도 있다.
결국 이 논란이 불편한 이유는 간단하다. 서점은 가만히 앉아서 원하는 걸 읽는 공간이다. 말을 걸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공공장소 중 하나였는데, 그 기대가 깨졌다는 거다. 번따를 하는 쪽도 어디서 자연스럽게 만남을 가질 수 있을지 답을 못 찾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만남의 장소가 달라진 건데, 그 공간이 서점이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계속 남는다.
📎 참고 자료
- 이성 번호 따러 서점 가요…'번따' 성지 된 대형서점 근황 (서울신문)
- 서점이 헌팅포차냐…'번따' 열풍에 누리꾼 갑론을박 (아시아경제)
- 요즘 대형서점이 '헌팅' 성지?…애서가들 불편 호소 (데일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