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선물로 식기세척기를 사봤거나 생각해본 적 있나. 이상한 선택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올해 SSG닷컴에서 식기세척기를 선물로 보낸 사람이 작년보다 960% 늘었다. 고물가 3년째, 선물 고르는 기준 자체가 조용히 바뀐 거다.

식기세척기 960%, 안마의자 502% —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버이날 선물로 식기세척기를 샀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좀 의아했다. 그게 선물이 되나 싶기도 했고, 부모님이 서운해하시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근데 2026년 데이터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 것이다.
4월 한 달치 SSG닷컴 선물하기 데이터를 보면, 식기세척기·건조기가 전년 대비 960% 올랐다. 전 카테고리 통틀어 1위다. 안마기·안마의자도 502%, 자급제폰·공기계는 234% 늘었다.
이게 단순한 연간 비교가 아니다. 어버이날 직전 한 달 치 '선물하기' 서비스만 떼어 분석한 수치다. 즉, 선물로 식기세척기를 보내는 사람이 작년보다 10배 가까이 늘었다는 이야기다.
처음엔 그냥 이상한 소비자들이 많아진 건가 싶었는데, 배경을 파고들면 그렇지 않다. 고물가가 2~3년째 이어지면서 선물을 고르는 기준 자체가 달라진 거다. 얼마짜리냐, 어느 브랜드냐보다 '실제로 얼마나 쓸모 있냐'가 판단 기준이 됐다.

고물가가 만든 CARE 트렌드 — 선물 기준의 전환
유통업계에서는 이 현상을 'CARE 트렌드'라고 부른다. 자기관리(Care), 합리적 럭셔리(Affordable Luxury), 해방(Relief), 지속 가치(Enduring value). 네 가지 흐름이 선물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해방: 가사 부담을 덜어주는 선물
식기세척기 960%, 안마의자 502%는 '해방(Relief)' 카테고리의 대표 사례다.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부담을 줄여주거나, 허리·어깨 피로를 풀어주는 것들이다. 가격이 50~100만 원대라도 '매일 쓰는 물건'이면 구매로 이어진다는 경향이 뚜렷하다.
예전 같으면 그 돈이면 가족 외식이나 여행을 택했을 텐데, 고물가 환경에서는 오래 쓰는 가전 하나가 더 낫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늘었다. 실제로 유아동 가구·인테리어 매출도 73% 늘었는데, 완구 신장률을 앞질렀다. 장난감 대신 오래 쓰는 가구를 사는 셈이다.

합리적 럭셔리: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224% 늘었다
같은 기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매출이 224% 증가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실험실에서 키운 인공 다이아몬드로, 화학 구조는 천연 다이아몬드와 동일하지만 가격은 30~70% 저렴하다. 외관상 구분이 거의 안 된다.
이게 선물 시장에서 뜬 건 '명품처럼 보이지만 가격은 현실적인 것'을 찾는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무조건 싼 걸 사는 게 아니라, 체감 만족도 대비 가격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소비가 이동한 것이다. 피부관리기 130%, 명품 바디케어 50%, 뷰티·헬스케어 상품권 82% 증가도 같은 맥락이다.
자기관리: 받는 분이 실제로 필요한 것
KB국민카드 분석에서 어버이날 선물 1위는 영양제(37%)였다. 마사지기(12%), 홍삼(10%)이 그 뒤를 이었다. 건강 관련 제품이 상위권을 점령한 건 꽤 오래된 흐름이지만, 올해는 '얼마짜리냐'보다 '받는 분이 진짜 필요하냐'를 먼저 따지는 분위기가 더 강해진 느낌이다.
부모님이 진짜 원하는 건 따로 있다
그런데 반전이 또 있다. 롯데멤버스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모님이 어버이날 받고 싶은 선물 1위는 용돈이었다. 70.8%가 용돈을 꼽았다. 자녀가 드리고 싶은 것도 83.9%가 용돈이었다. 식기세척기나 안마의자가 아니라 현금이다.
평균 선물 예산은 29만 원인데, 이는 전년보다 8만 원 줄었다. 고물가 영향이다. 그럼에도 용돈을 드리는 방식은 진화하고 있다. 봉투에 넣는 게 아니라 쌀포대나 용돈박스, 감사패 형태로 포장해서 드리는 '이벤트형 용돈'이 SNS에서 계속 뜬다. 용돈이라는 내용물은 같지만, '어떻게 전달하느냐'에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내가 작년에 처음 용돈박스를 드렸을 때, 부모님이 생각보다 좋아하셨다. 금액보다 준비한 과정을 기뻐하셨다. 그게 결국 선물의 본질이기도 하다.
실용 선물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단점을 짚어야 한다. 식기세척기나 안마의자가 데이터 상 잘 팔린다고 해서 모든 부모님께 맞는 건 아니다. 가전에 익숙하지 않거나, 집이 좁거나, 이미 비슷한 제품이 있는 경우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부모님 세대 중에는 비싼 가전을 받으면 미안하다고 거부하시는 분들도 있다.
CARE 트렌드는 트렌드일 뿐이고, 결국 받는 분의 성향을 아는 게 먼저다. 실용 선물이 맞는 부모님께는 식기세척기가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지만, 감성적인 표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분께는 꽃 한 다발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데이터가 방향을 알려주지만, 정답은 아니다.
어쨌든 이 숫자들이 보여주는 건 분명하다.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선물의 기준이 달라졌다. '얼마짜리냐'보다 '얼마나 자주 쓰이냐', '정말 필요한 거냐'로 기준이 옮겨가고 있다. 그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어버이날이 3일 남았다. 아직 고민 중이라면 부모님이 요즘 뭘 필요로 하시는지 한번 떠올려보는 게 가장 빠른 답일 것이다.
비슷한 소비 트렌드가 궁금하다면 어린이날 선물비 10년 만에 2배, 1위가 장난감 아닌 이유가 있었다와 2030 주점 결제 줄고 피부과 29% 늘었다, 소비 지출이 실제로 이동했다도 읽어볼 만하다.
📎 참고 자료
- 식기세척기 960%·안마의자 502%… 가정의 달 선물, '해방'이 대세다 — 자본시장뉴스
- "비싸도 쓸모 없으면 외면"…고물가에 선물 소비 기준 바뀌었다 — 인더스트리뉴스
- KB국민카드 가정의 달 소비 트렌드 분석 — 라이센스뉴스
- 부모님이 어버이날 진짜 받고 싶은 선물은? — 데이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