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각 수박 매출이 111% 급증했다. 마트 과일 코너에서 반통, 1/4통짜리 수박이 핵심 자리를 차지하게 된 건 1인 가구가 37%로 늘고 고물가가 겹친 결과다. 소비 단위가 달라지고 있다.
마트에서 수박 반통을 담게 된 날
4인 가족 기준으로 설계된 마트 진열대가 요즘은 좀 달라 보인다. 과일 코너 중앙에 커팅 수박이 자리를 차지하고, 버섯은 50g씩 소분돼 있고, 대파는 3~4뿌리 묶음으로 팔린다. 몇 년 전만 해도 조각 과일은 구석에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메인 자리를 꿰찼다.
나도 처음엔 귀찮아서 조각을 샀는데 이제는 당연하게 됐다. 혼자 사는데 수박 한 통을 사면 절반은 버리게 된다. 그러면 만원짜리 통수박이 실제로는 더 비싸지는 셈이다. 조각 수박을 사면 그날 먹을 만큼만 쓰고 끝난다. 이걸 깨달은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었다.

숫자가 말해주는 한입 소비의 규모

조각 수박 111%, 방울양배추 172%
가장 극적인 변화는 수박 코너에서 일어났다. 롯데마트 기준 올해 1~4월 조각 수박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11.3% 뛰었다. 껍질 버리는 게 귀찮던 수박이 1/4쪽씩 잘려서 팔리기 시작하자 팔리는 속도 자체가 달라진 거다. 방울양배추도 172% 늘었고, 다진마늘을 큐브 형태로 냉동 소분해서 파는 제품은 45.5% 증가했다.
왜 이렇게 됐냐면, 혼자 사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다. 세 집 중 한 집이 1인 가구다. 예전 마트 진열 기준은 4인 가족이었는데 지금은 그 기준이 통하지 않는다. 이마트 소분 상품 매출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건 단순 취향 변화가 아니라 구조적인 이동이다.

편의점까지 뛰어든 신선식품 소용량
편의점도 예외가 아니다. GS25는 1~2인 가구를 겨냥한 '한끼딱' 시리즈를 출시했다. 버섯, 상추, 고추, 대파 등을 50~120g 또는 1~5개 단위로 판매하는데, 지난해 신선식품 매출이 전년 대비 20% 늘었다. CU는 '싱싱생생 990원 채소' 시리즈로 신선식품 매출이 18.7% 증가했다. 세븐일레븐도 롯데마트와 공동 소싱으로 커팅 무, 깐 당근을 소포장으로 팔기 시작했고 신선식품 매출이 10% 올랐다.
유통업계에서는 이 흐름을 '바이트 사이즈(Bite-size) 소비'라고 부른다. 단순히 양을 줄인 게 아니라 자신의 생활 패턴에 맞게 소비 단위를 세밀하게 조정하는 '소비의 정밀화'라는 설명이다. 쌀 시장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10kg, 20kg 단위로 팔리던 쌀이 이제 2kg, 1kg, 심지어 300g 소포장으로 나오고 있다. 농협유통에 따르면 소포장 쌀(5kg 이하) 판매 비중은 18% 증가했다.
식품 넘어 화장품·세제까지
이 흐름이 식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게 흥미롭다. 화장품도 미니어처가 여행용 아이템에서 일상 소비재로 바뀌었다. 아모레퍼시픽은 미니 사이즈 제품 매출이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고 밝혔다. 예전엔 호텔 갔을 때 챙겨오던 샴푸 미니를 이제 집에서 쓰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거다.
생활용품도 대용량 리필 위주에서 소용량 일회용 팩 형태로 다변화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소용량 생활용품 라인을 전년 대비 40% 확대했다. 세제나 섬유유연제를 대용량으로 사뒀다가 곰팡이 피워서 버린 경험이 있다면 이해되는 흐름이다.
참고로 슈링크플레이션과 헷갈릴 수 있는데 방향이 다르다. 슈링크플레이션은 기업이 가격을 유지하면서 몰래 용량을 줄이는 것이고, 소용량 소비는 소비자가 직접 더 작은 단위를 선택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다.
소용량이 꼭 저렴한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소용량 제품이 g당 단가로는 더 비싼 경우가 많다. 조각 수박 400g 제품과 통수박을 g당 단가로 비교하면 통수박이 훨씬 싸다. 편의점 소분 채소도 마트 묶음 대비 단가가 높다.
그런데도 소용량을 선택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혼자 사는 입장에서 대용량을 사면 절반은 버리게 된다. 수박 한 통 샀다가 절반 버리는 비용까지 합산하면 조각 수박이 손해가 아닐 수 있다. 낭비 비용까지 계산하면 단가 비교가 달라진다. 그렇더라도 단순히 g당 가격만 보면 비싸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가계 지출을 줄이려는 게 목적이라면 대용량 구매 후 냉동 보관 전략이 더 경제적일 수 있다.
1인 가구의 소비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당근에서 소분 모임이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용량을 여럿이 나눠 먹거나, 마트에서 소용량을 사거나 — 방법은 달라도 결국 내가 필요한 딱 그만큼만 쓰고 싶다는 욕구는 같다. 마트 진열대가 달라지는 건 그 욕구의 반영이다.
📎 참고 자료
- 삼겹살도 수박도 '조각' 낸다…유통가 점령한 '한입 소비' — 연합뉴스 (2026.05.02)
- 한 입의 미학 '소비의 정밀화' 시작됐다 — 서울일보 (2026.05.04)
- 고물가가 바꾼 식탁···유통가 '벌크 vs 한입' 소비 양극화 — 서울파이낸스 (2026.05.06)